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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2명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아
기사입력  2021/03/02 [15:59] 최종편집    김대연 기자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2명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아


[KJA뉴스통신] 장흥문화원은 2021년 3.1절을 계기로 이순주 선생과 문홍식 선생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53명으로 늘어났다.

이순주 선생은 16세이던 1931년 장흥청년동맹에 가입해 동지 김옥석, 최두용, 고삼현, 유재성, 문병곤 등과 함께 비밀리에 농민야학을 하며 농민의 생존권 투쟁을 펼쳤다.

1932년 말경 이른바 ‘남면 야학 사건’으로 장흥청년동맹 동지들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장흥경찰서에 수감됐다.

출옥 후 1933년 독립운동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장흥적색농민조합 청년반 책임자로 활동하던 중, 1934년 1월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르던 중 모진 고문의 여파로 병환이 위독해지자 일제는 병보석으로 이순주 선생을 석방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미처 결혼하지 못했던 선생을 친인척들이 목포의 어느 여관으로 모셨으나, 꽃다운 나이인 21세를 일기로 1936년 10월 5일 여관에서 쓸쓸하게 순국했다.

문홍식 선생은 18세이던 1933년 이순주 선생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선생은 동지들인 길양수, 길덕동, 임도진 선생 등과 함께 일본인 지주 및 친일 지주에 대한 소작 쟁의 활동을 펴는 한편 야학을 개설해 독립사상을 고취하던 중, 1934년 2월경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선생은 민족 교육을 펼치기 위해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해방 후 장평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이른바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할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당시 장흥의 대부분 학교 교사들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난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활동을 펼쳤다.

선생은 여러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교장으로 퇴임한 후 1987년 장흥읍 건산리에서 별세했다.

장흥문화원은 최근 ‘문림의향 장흥역사 자원 발굴 조사’ 사업의 결과로 자료집 ‘다시 쓰는 장흥항일독립운동사 – 명예 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해’를 펴냈다.

장흥문화원은 이 책자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 기록해 국가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조사 진행을 맡고 있는 장흥문화원 문충선 이사는 “2021년 관산읍 죽교리, 안양면 모령리, 용산면 운주리와 어산리, 접정리와 덕암리, 장평면 등촌리와 양촌리, 유치면 단산리와 덕산리, 오복리, 대덕읍 연지리와 연정리, 신월리, 회진면 덕도 등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마을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기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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