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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A뉴스통신]
세계의 많은 섬이 여신의 보호를 받는다. 하와이 섬들의 수호신은 펠레 여신이다. 불을 뿜는 화산에 거처하며 섬사람들을 지켜준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는 서풍에 밀려 키프로스 섬으로 갔는데 거기서 계절의 여신들이 입혀준 옷을 입고 사랑과 미의 신이 됐으며 섬의 수호신이 됐다. 제주도는 설문대할망이란 여신이 창조했다. 통영 섬들의 창조신은 마구 할매다.
진도 바다의 지배자는 영등할미 여신이고, 부안 앞바다를 관장하는 신은 계양할미 여신이다. 완도 생일도의 수호신도 여신인 마방할머니다. 마방할머니를 모시는 생일도 서성리 당숲은 완도 일대에서도 영험하기로 이름 높은 곳이다. 생일도의 기독교 신자들도 당집 앞에 가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할머니 신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고백할 정도다.
마방할머니는 옛날 생일도가 국영 말목장이었을 때부터 생일도의 수호신이었다. 그 마방할머니가 지금도 생일도의 수호신이다. 마방할머니가 기거하는 서성리 당숲은 신령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지금도 주민들은 두려움에 당숲의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오로지 정월 초파일 당제를 지내고 나서야 부러지거나 썩은 당숲의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태울 수 있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생일도는 그 이름처럼 누구나 다시 태어나는 섬을 내세우고 있다. 이 신령한 당숲, 신전 앞에 와서 마방할머니 여신에게 기원을 드리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일도에 가거든 꼭 이 당숲에 참배해 보시라. 외경을 알게 될지니.
여신의 신전과 함께 생일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섬의 랜드마크인 백운산(482m)이다. 섬의 산 치고는 제법 높은 편이지만 백운산 트레킹 길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쉬엄쉬엄 걷다보면 금방이다. 트레킹 길 입구는 여러 곳이지만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서성리 당산나무 부근 임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임도는 금곡리까지 6㎞의 평이한 산길로 이어져 있는데 임도의 중간쯤 멧돼지 전망대부터 오르막이다. 하지만 이 오르막 구간은 15분 남짓이면 충분하니 힘들 틈도 없다. 오르막의 끝에서 능선이 시작된다.
백운산 능선에 서면 다도해의 섬들, 가깝게는 고금, 약산, 신지, 완도, 금일도부터 멀리 소안, 청산, 보길, 대모, 소모, 횡간도 같은 완도의 섬들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힐링이 대세인 시대. 지방자치단체들은 힐링을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예산을 들여 자꾸 인공적인 무언가를 만들려 든다. 하지만 대자연의 품에 안겨 바라보는 장엄한 풍경보다 더 좋은 힐링 상품은 없다. 섬은 그 자체로 힐링 공간이다.
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힐링이 시작된다. 백운산 능선길은 생일도 최고의 힐링 포인트다. 발 아래 펼쳐지는 다도해의 장관을 보며 걷거나 넋 놓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온통 정화되는 느낌이다. 학서암 방향으로 내려오면 섬에서는 드물게 300년이나 된 고찰인 산중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그윽하다.
백운산이나 당숲 말고도 생일도에는 잘 보존된 빼어난 숲이 많다. 굴전리에는 구실잣밤나무 군락지가 50만㎡나 남아 있고 금곡리의 동백숲도 15만㎡나 된다. 이 동백 숲으로 인해 생일도의 겨울은 그야말로 동백의 화원이다. 금곡리에서 용출리까지 3.7㎞의 옛길인 금머리 갯길은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황홀한 트레일인데 여기에도 자생 구지뽕나무 군락지가 보존돼 있다.
숲과 바다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생일도는 더 보태지 않아도 남도의 최고 보물섬이다. 생일도는 과거 완도에서 배가 다녔지만 이제는 연륙이 된 고금도와 약산도까지 차로 들어가 약산도 당목항에서 30분 남짓만 배를 타면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생일도에 가는 길 약산도에는 굴 양식장과 굴을 까는 작업장이 많다.
겨울이 제철인 이 굴을 한 망태기쯤 사다 굴구이나 찜을 하면 최고의 성찬이다. 이 섬들에서는 생굴을 초장이 아니라 참기름에 찍어 먹는다. 초장이 굴 본연의 맛을 죽이는 데 비해 참기름은 고소함을 더 살려주고 비린 맛도 없애준다. 생일도는 또 전복과 다시마의 고장이다. 현지에서 맛보는 전복과 다시마는 달디 달다. 생일도산 자연산 홍합구이 또한 겨울의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