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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같은 한국 현대사를 함께 ‘동행’한 평생의 동지, 영면에 들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他界, 향년 97세
기사입력  2019/06/11 [09:52] 최종편집    이기원

 

▲  생전의 이희호 여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 KJA 뉴스통신

[KJA뉴스통신=이기원 기자]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향년 97세로 타계했다.

그녀의 삶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여성운동의 선구자, 고 김대중 대통령의 평생 동지’

고 이희호 여사는 독신의 여성운동가에서 정치인이 아내로, 내조자에서 동지로 남편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험난한 현대사의 굴곡을 지나 생의 여정을 마감했다.

이 여사는 1922년 부유한 기독교집안에서 유복하게 성장해 이화고등여고(이화여고 전신),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전신),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램버스대와 스카렛대를 유학한 엘리트이다.


이런 그녀가 1958년 귀국해 대한YMCA총무를 맡으며 본격적인 여성운동가의 길에 접어든다.

또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범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연합회 한국지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여권 신장운동에도 적극 나선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여성운동에 매진하던 이 여사는 1962년 만 40세의 나이로 김 전 대통령과 운명적 결혼을 하면서 ‘정치인 아내’의 길에 들어섰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과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의 감시와 모진 탄압을 견뎌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 때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국제적인 구명운동을 펼쳤다.

이후 1987년 정치적 해금이 된 김 전 대통령은 13대, 14대의 연이은 대선 실패로 정계를 떠나야 하는 선택을 한다.


1997년 네 번째 도전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안주인으로 입성해 이 여사는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때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공직 진출이 확대되면서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회자되곤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영부인으로는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47년간의 반평생 부부생활을 마감했으나 김 전 대통령의 족적이 서린 햇볕 정책의 계승자로 역할을 활발히 펼쳤으며 타계 직전까지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대북 관계 형성에 힘써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동교동계와 재야 정치인들의 거목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발인은 14일 오전 6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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