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A뉴스통신=이기원 기자]1996년 <일간스포츠> 신춘대중문학상으로 등단한 백은하 작가가 소설집 『의자』(문학들 刊)를 출간했다. 소설집 『의자』 에는 <의자> <마음의 얼음> <햇빛 모으기> <탐조등> 등 열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백은하 작가가 이번 소설집에서 내보이는 리얼리즘은 세계의 폭력 속에서 별거 아닌 이들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남편과 이혼하고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호루스와 폭행과도 같은 섹스를 하면서 결국 그의 아이를 갖게 된 채원의 이야기(「마음의 얼음」)나 그린벨트와 맞닿아 있어 가치가 거의 없었던 땅에서 30년을 살아온 김병수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돈” 13억 원을 빼앗긴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화병에 걸린 것(「햇빛 모으기」)도, 1950년대의 특정한 사건을 소환하여 세계가 우리에게 가한 폭력을 고발하며 씻김굿을 하려는 「귀향」에서도,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감으로써 저항한다. “멀리 있는 불빛을 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을 뚫고 걸어가는 사람”(「탐조등」)처럼, “저 멀리에 있는 빛이 미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꿋꿋이 걷는 행위, 거기에 바로 문학의 윤리가 있다”는 송민우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하는 백은하 작가의 리얼리즘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어 준다. 백은하의 소설 속 작중인물들의 글쓰기 욕망을 두고 과거에 개념/담론으로 적극 호명된 적이 있는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를 떠올리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일 텐데, 물론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사유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백은하의 소설은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소설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백은하 소설의 리얼리즘은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의 울림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최근 들어 다시 한국문학장 내에서 다시금 저자의 존재가, 정확히 말하면 저자라고 하는 주체의 젠더적 위치성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레즈비언 서사와 월경을 멈추는 신약의 존재,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디에도 없는 곳」과 같은 소설에서 보수적 남성성을 표상하는 여성인물 ‘은수’나 1990년대 전후의 한국의 여성운동을 표상하는 여성인물 ‘지효’의 등장은 최근의 논의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백은하의 소설을 통해서라면 글쓰기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여전히 기대해도 될 듯하다. 백은하는 1968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1996년 일간스포츠 신춘대중문학상 소설 당선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무지개에는 왜 검은색이 없을까요?』, 『별의 시간』, 장편소설 『블루칩시티』, 『마녀들의 입회식』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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