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하‘새정치연합’)의 대표에 문재인 의원이 선출되었다. 대선 패배 이후 리더십 공백에 허덕이던 새정치연합에는 지난 대선 2위를 차지한 문재인의 존재감이 절실했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지난 대선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문재인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은 전면에 나서라는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절박함이 문재인으로 하여금 야당 대표라는, 독배를 들게 만들었다. 또한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인 문재인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총선을 앞둔 새정치연합의 배수진이기도 하다. 그만큼 상황은 절박하다.
출범 이래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허접한 위기대처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을뿐 아니라, 초이노믹스라는 이름의 무리한 경기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며 서민 생활을 위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초이노믹스의 방점이 '더 내고 덜 받는' 연말정산이었을 텐데 결국 대다수의 근로소득자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 상황에서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박근혜정부는 끝까지 증세 없는 복지를 부르짖는 등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어찌 재원이 수반되는 복지에 증세없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기업이나 가정들도 그 방법을 배워야 할것이다. 박근혜정부에게는 소수의 부유층, 권력층, 그리고 대기업들 만이 관심의 대상이고 국민이고 그렇다.
새누리당은 어차피 갈길이 정해져 있었다. 새누리당과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선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자기의 목적지와 상관없는 열차를 타고도 자기들이 잘못 승차한 줄을 모르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 줄 모른채 말이다~~
그나마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정부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김무성 당대표조차도 복지가 과잉이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공공연히 얘기하지만, 나태해질대로 나태해진 국민들은 그러한 말들을 접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정말 야무진 야당이 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이다. 하기사 야무진 야당이 있어도 국민들은 그 야당에게는 고맙다는 말 조차 하지 않을것이 뻔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야당에게 있어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을 심판하고 남은 2년을 견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2017년 정권교체와 그 이후 국정운영을 위해 필수적으로 획득해야 할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총선을 진두지휘할 당 대표는 야당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인물을 내세워야 할 것이기에, 대표 경선 역시 역대 야당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었던 두 리더십(결국에는 대통령 자리에 앉았으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나?)의 대결로 압축되었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이 펼쳐졌다.
그럼에도 이번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첫째로는 흥행에 실패한 무관심 전당대회였다는 혹평이요, 두번째로는 고질적인 계파 갈등을 드러낸 막장 전당대회였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과연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는 엉망이었나?
우선 흥행 문제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야당 전당대회에 관심을 갖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출범이래 야당 전당대회가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거나, 오랜 기간에 걸쳐 전국 순회 경선을 치르는 형태였다면 모르겠지만 당 대표를 뽑는 1회성 경선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고질적인 계파 갈등과 관련, 새정치연합에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국가의 정당에서 계파가 생기는 것 자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정책의 방향이나 한정된 자리 배분을 놓고 계파 간의 갈등이 생기는 것 또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대표 선출, 그것도 총선 공천권과 대선 후보 경선 규칙 등을 좌우할 수 있는 당권을 놓고 경쟁이 붙었는데 계파 간의 대립이 전혀 없다는 건, 오히려 그 정당이 1인의 지도자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사당(私黨)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당장 지난해 새누리당의 전당대회만 보더라도 친박(서청원)과 비박(김무성)이 얼마나 심한 대결을 펼쳤던가, 그런데 유독 새정치연합만 계파 간의 대립으로 집권할 수 없는 무능한 정당인 양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친노 vs 비노로 상징되는 계파 구조나 계파 간의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계파 간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각종 정책의 결정 과정이나 인사 문제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필연적으로 다음 대선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보이는 문재인 대표의 입장에서는, 총선 및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서 소위 비노 진영이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이 과장 큰 과제일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후보가 되더라도 당선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당직 인선이나 주요 지역구 공천과 관련해서도 진영과 계파를 뛰어 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런저런 잡음이 없지 않았던 민주통합당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당내에서도 친노와 문재인 대표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이 분명 있다. 어쩌면 박지원 후보를 찍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소위 친노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작은 이익을 쫓기보다는 큰 정치를 하길 바란다. 가까운 사람들을 곳곳에 심는 것보다 아직까지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현재의 친노를 넘어서는 거대한 친 문재인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계파 간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극복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경선 과정 중 불거진 룰 변경 논란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비대위와 전준위(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며 문재인 후보 측의 입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이지만, 어차피 경선 후에도 박지원 후보 측을 안고 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 후보 본인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당연히 정치생명까지 걸고 배수진을 친 문 후보의 절박함과 예측을 불허하는 박빙의 승부가 된 막바지 판세를 생각하면 쉽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뮬레이션해보니 원래의 룰과 변경된 룰의 차이는 전체 득표율 대비 1.5% 정도에 해당되는데, 이 정도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대표가 되더라도 난감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노무현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승부수도 마다하지 않는 과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문재인이 제1야당 대표를 넘어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무현을 넘고 2012년의 스스로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박지원 후보의 선전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문재인 대세론이 당연시되던 상황에서 처음에는 밸런스 붕괴의 미스매치로까지 여겨지던 박지원의 출마였지만, 일흔네 살의 노구를 이끌고 당권 경쟁을 끝까지 혼전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저력은 정권교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표와 그 지지자들 입장에선 지난 2월 2일 JTBC토론을 전후해 분당까지 거론할 정도로 과격해진 박지원후보의 발언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축제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를 인신공격이나 일삼는 저질 막장대회로 전락시킨 점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총선과 대선 기간 중에 그보다 더 혹독한 공격과 흑색선전에 노출될 문 대표로서는 적절한 스파링 상대를 통해 맷집을 키워두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더욱이 2012년 대선 당시 박지원은 어지간한 친노보다 더 적극적인 문재인의 후원자가 아니었나.
근소한 표 차이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승복을 선언한 박지원의 결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표는 반드시 조만간 박지원 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현장 연설에서 말했던 "흩어진 48%를 다시 모으고,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쨌건 문재인 대표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로 시끄러운걸 보니 만만치 않은 자리임은 분명한 듯 해보인다.
사실 취임 첫 일정으로 하필이면 이승만-박정희 두 사람의 무덤 앞에 고개 숙인 야당 대표의 모습을 봐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부인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지난날 두 사람의 독재에 대해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이쪽에서 그들에게 먼저 가서 머리를 숙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냉정해지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얻은 48%만으로는 절대 다음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산술적으로 여당 지지세력 중 상당수의 유권자를 야당으로 돌려놔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이승만-박정희가 독재자인 건 분명하지만 나름대로 업적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중용의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김대중-노무현 묘소도 참배하는 대인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승만-박정희 묘소도 외면하는 소인배'로 지극히 이중적으로 분류하는 보수언론의 프레임으로부터도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기본 전제는 서두에도 밝혔듯이 논리보다는 직관의 영역이기에 설득을 통해 극복하는 것보다는 형식 면에서 다소 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서라도 우리 편으로 만들 궁리를 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무덤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고 죽은 독재자가 살아 돌아올 게 아닌 이상, 근본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예의를 갖추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야당 대표 시절 이승만-박정희 묘역에 참배했던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김대중이 이승만-박정희에게 굴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가 철천지 원수 중 한 명으로 여기며 군대까지 보내 막으려 했던 공산 베트남의 대부격인 호치민의 묘소에 참배하는 불효막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베나 어버이연합은 물론이고 월남전참전자회나 고엽제전우회에서조차 반발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당연히 문재인의 비굴한 듯 한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옛날이야기 한 가지를 소개한다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당시 민주당 백원우의원은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한 이명박에게 "정치 보복 사죄하라"며 사자후를 토했다. 모두가 놀라면서도 통쾌해 하고 있을 때, 문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명박에게 다가가 정중히 사과했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영결식의 격을 높여준 멋진 모습이었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많은 사람들에게 문재인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된 장면이었다.
그 당시 문재인인들 이명박에게 쌍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대의를 위해 감정을 억제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때로는 적뿐만 아니라 우리 편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총선승리와 정권교체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제1야당 대표라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문재인의 운명'인 것이다.
지에스아이뉴스/김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