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말 들여오던 해남 이진성지 국가사적 지정 추진 |
[KJA뉴스통신=변주성 기자] 해남과 제주의 출입통제소로서, 제주말을 수송하던 통로가 되었던 이진성지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이 추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남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해남 이진성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자문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이진성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마을을 둘러싼 석성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에 지정돼 있다. 성벽 길이는 940여m, 남북의 구릉지를 이용해 축성한 남북장축의 타원형 진성으로 해남에 남아있는 여러 성 중 가장 완벽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선조 21년(1588) 진을 세웠으며, 인조5년(1627) 만호진으로 승격하면서 성을 축성하였으며, 고종 32년(1895) 폐진되기까지 약 300여년간 해안 방어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1597년 8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진도 벽파진으로 이동 중 토사곽란(배앓이)으로 이진성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성내에는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장군샘과 역대 수군만호에 대한 공적비 4기가 있다.
특히 이진성은 제주도에서 말과 공물을 수송하던 포구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진성지의 동쪽으로는 달도와 완도가 있는데 예전에 제주도 출입통제소였으며, 이곳에 제주말을 싣고 오는 배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제주돌을 싣고 와 말을 내린후 이 마을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구멍 뚫린 현무암 제주도 돌을 돌담이나 정원 막음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현재 마을을 출입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서문지에 대한 집중 조사가 이뤄져 축조방식과 옹성부,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초석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성벽의 축조 방식과 성벽 외부방어시설인 치성도 확인했다.
너비 3m의 서문지는 둘레 34m, 높이 5m, 너비 2.2m의 옹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지형에 따라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서문지와 같은 평지에 위치한 성벽은 협축식(성을 쌓을 때 내외부를 모두 돌로 쌓는 것)으로 성을 쌓았으며, 북벽과 같이 구릉정상부의 경우 편축식(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채우는 방법)으로 쌓았다.
출토유물은 주로 자기류와 기와류가 다수를 차지한다. 백자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폭넓게 확인된다. 특히, 조선중기의 지방백자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데, 이는 16세기말~17세기초 주로 보이는 오목굽의 지방백자인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활발한 성내 활동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날 현장자문위원회에서는 이진성지의 발굴조사 결과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국가사적 지정 등 체계적인 관리와 복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군 관계자는“시간이 지남에 따라 훼손정도가 심해지고 있어 이번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성내 객사와 건물지 등에 대한 추가 학술조사 및 연구를 지속 추진할 계획으로, 의견을 종합해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