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A뉴스통신] 첩보부대 창설일인 지난 1951년 3월 6일 이전이라도 6.25전쟁 중 특수임무를 수행했다면 특수임무수행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6·25전쟁에 참전한 A씨가 특수임무를 수행했다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에서 정한 1951년 3월 6일 이전에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수임무수행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에게 특수임무수행자 불인정 처분을 한 국방부에 재검토를 요청하고, 관련 시행령의 개정 등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18세였던 A씨는 1950년 7월 중순경 ‘내 고향은 우리들이 지키자’는 결의 하에 동료 학생 53명과 ‘안강학도대’를 조직하고 학도병으로 현지부대에 입대하여 포항시 기계면 안강전투에 참전했다.
1950년 8월 10일경 제1군단 사령부 첩보대는 살아남은 학도병 일부를 경주시 인근에서 전투 정보입수, 적 후방 교란 등의 첩보교육을 시켰고, A씨는 제5지대에 소속되어 1951년 1월까지 적의 정보수집 및 전투부대 지원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A씨의 6·25전쟁 참전과 특수임무수행 사실이 확인되지만,'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특수임무수행자 인정 시점을 ‘육군 첩보부대 창설일인 1951년 3월 6일 이후’로 규정됐다며 두 차례나 불인정 결정을 했다.
이에 A씨는 ‘6·25전쟁 후반기에 활동한 첩보요원은 특수임무수행자로 인정하고, 전반기에 활동한 첩보요원은 불인정하는 것은 억울하다며 올해 5월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A씨가 소속되었던 제1군단 첩보대가 1951년 3월 6일 창설된 육군첩보부대와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 육군첩보부대 창설 이전 첩보부대라는 점 국방부도 A씨가 1군단 첩보대 소속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했다고 인정한 점, 특수임무수행자 보상법 제2조가 ‘특수임무수행자의 자격을 1948년 8월 15일부터 2002년 12월 31일로 규정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육군 첩보부대 창설 이전에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수임무수행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국민권익위 권근상 고충처리국장은 “어린학생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특수임무까지 수행했다면 육군 첩보부대 창설 이전이라도 특수임무수행자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이번 기회에 특수임무수행자 보상 신청기한 연장 등 관련법령이 재정비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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