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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자살’로 처리된 윤병선 소위 사건 재수사해야
수사·조사기록 모순, 유서 없고 참고인 진술 엇갈려
기사입력  2018/09/11 [11:13] 최종편집    이기원 기자
    국민권익위원회
[KJA뉴스통신] 37년 전 임관한 지 50여일 만에 서해안 해안초소에서 숨진 채 발견돼 ‘자살’로 처리된 故 윤병선 소위 사망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윤 소위의 사망원인을 다시 조사해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동생인 윤 모씨가 제기한 고충민원에 대해 윤 소위의 사망사건이 명확하게 규명될 수 있도록 국방부에 재수사를 권고 했다.

故 윤 소위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학군 19기로 1981년 6월 경기도 시흥 소재 군부대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윤 소위는 임관한지 50여일이 지난 8월 16일 새벽 오이도 부근 해안초소에서 순찰 근무 중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부대는 “술에 취한 부하가 총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한 뒤 실제로 총알이 발사되는 하극상이 발생했는데, 중대장이 부하를 질책하지 않고 그냥 데리고 간 것에 불만을 품고 총기로 자살했다.”고 밝혔다.

이후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해 2001년에 재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사망원인은 바뀌지 않았다.

이에 유족들은 “군 복무를 마친 뒤 대기업에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등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누명을 벗겨주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올해 3월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의 조사결과, 군부대의 설명처럼 실제로 사고 당일 해당지역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군 사법 경찰관의 보고서에는 ‘ 1981년 8월 16일 새벽 1시 30분경 해안 경계 초소에서 근무 중인 부사관 2명이 소주 2명을 나누어 마시다 순찰 중인 윤 소위에게 적발 힐책을 받고 근무지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은 A부사관은 불만을 품고 윤 소위 뒤를 따라 가다 M16소총에 실탄을 장전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 옆에 있던 B부사관이 A부사관의 소총을 빼앗는 순간 공포탄 한 발이 발사됨’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 이후 윤 소위는 부하로부터 협박 받은 자신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없었고 A, B부사관을 힐책도 하지 않는 중대장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고민하다 새벽 4시 35분경 아카시아 나무 중간부분에 개머리판을 밀착시키고 총구를 자신의 명치에 밀착해 자살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는 당시 작성된 보고서에 자살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 사항이 모순되고 보고서 기록이 참고인 진술과 엇갈리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첫째, 사건 당일인 16일에 작성된 보고서에는 “사입구가 0.4㎝, 사출구는 1㎝”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다음 날 작성된 사체검안서에는 “사입구는 0.8×0.8㎝의 원형, 사출구는 0.8×0.5㎝의 타원형”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둘째, 당일 보고서에는 “아카시아나무 지상으로부터 2.7m 높이에 개머리판을 대고, 지상으로부터 1.5m 진지 뚝 위에 서서 키 169㎝의 윤 소위가 명치에 총구를 대고 격발”이라고 기록되어 총탄이 수평 형태로 관통한 것’으로 해석되나, 사체검안서에는 “사입구는 명치 끝 상방 1㎝ 좌방 3㎝, 사출구는 요추 5번째 상방 15㎝ 중앙부에서 좌방 12cm”라고 기록되어 있어 총탄이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사선 형태로 몸을 관통한 것으로 해석됐다.

셋째, 당일 보고서에는 윤 소위가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2001년 재조사 때 중대장과 전령의 진술조서에는 “소대장실에 왔을 때 사망”, “소대장실에 왔을 때까지 숨을 허덕이고”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넷째, 당일 보고서에는 윤 소위의 자살 원인으로 “지휘 통솔력 부족, 부대 적응 미흡, 공포심,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 동료등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면회 및 서신 왕래 전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2001년 재조사 시 참고인 진술서에는 “군인정신 투철, 책임감이 강함, 내성적이고 원칙론, 원칙주의 강하고 융통성이 없음”으로 기록되어 평판이 달랐다.

다섯째, 중대장은 윤 소위를 “후송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으나, 의무중대 선임하사와 중대 인사계는 “윤 소위의 시신을 대대에서 보았다.”고 진술해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국민권익위는 이 같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국방부가 지난 2001년 재조사를 했지만 유가족이 여전히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점, 당시 사고 현장에 윤 소위의 유서나 목격자가 없었던 점, 윤 소위에 대한 관계자들의 평판이 사고 당시와 재조사 때인 2001년이 상반되는 점, 2001년 재조사 때 평판을 보면 윤 소위가 하극상을 당했고 힐책하지 않는 중대장의 행위에 불만을 품고 자살했다는 결론이 납득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재수사를 통해 윤 소위의 사망사건을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국민권익위는 윤 소위 사망사건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도록 재수사하고 그 결과를 유족에게 상세히 설명해 줄 것을 국방부에 권고 했다.

국민권익위 권태성 부위원장은 “2001년 재조사 때 사망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라면서,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윤 소위 사망사건을 철저히 재수사해 유가족의 의문점을 풀어주고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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